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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타로 보는 세계

국제질서의 ‘빅 사이클(Big Cycle)’, 제국의 흥망 - 연기법적 해석 feat 'Ray Dalio'

by lionwiz 2025. 6. 3.

The changing world order

― 네덜란드에서 미국까지 ‘Big Cycle’을 통해 본 불교적 통찰

“모든 것은 원인(因)과 조건(緣)에 의해 생겨난 결과(果)이다.”
– 불교 연기법 中

레이 달리오(Ray Dalio)의 『Changing World Order』는 지난 500년 동안 세계 패권을 쥐었던 국가들이 어떻게 등장하고, 전성기를 누리며, 왜 쇠퇴했는지를 “빅 사이클(Big Cycle)”이라는 틀로 설명합니다.

Big Cycle

 

① 새로운 세계 질서(New World Order)

② 평화와 번영, 그리고 생산적인 부채의 증가(Peace, Prospertiy and Productive Debt Growth)

③ 부채 버블과 큰 부의 격차(Debt Bubble and Big Wealth Gap)

④ 버블 붕괴와 경기 침체(Debt Bust and Economic Downturn)

⑤ 돈과 신용 찍어내기(Printing Money and Credit)

⑥ 혁명과 전쟁 발생(Revolutions and Wars)

⑦ 부채와 정치적인 구조조정(Debt and Political Restructuring)

⑧ 새로운 세계 질서(New World Order)

 

이러한 거대한 역사 흐름은, 사실 불교의 연기법 — “모든 현상은 원인과 조건에 의해 일어난 결과”라는 통찰 — 과 완벽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1. 패권국의 등장: 인(因) — 씨앗을 뿌리는 순간

모든 제국은 씨앗에서 시작됩니다.
그 씨앗은 단지 우연히 떨어진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간과 공간, 역사적 조건 속에서 스스로를 ‘패권’으로 성장시킬 가능성을 품고 있던 인(因)**이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은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 즉 시작이자 목적지를 이미 내포한 출발점입니다.

네덜란드는 지리적 조건을 이용해 해상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고, 세계 최초로 주식시장과 금융 자본을 발명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제도적 변화가 아니라, 자본주의 패권의 씨앗이었습니다.
영국은 이 네덜란드 모델을 받아들여 강력한 해군력, 금융 시스템, 그리고 산업혁명이라는 기술 혁신을 결합시켰습니다. 이 조합은 영국을 근대 세계질서의 설계자로 만들었습니다.
미국은 더 나아가, 군사력과 달러라는 금융 지배력, 그리고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기술 혁신력을 통해 21세기의 새로운 패권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이처럼 ‘인’은 단순한 시작이 아니라, ‘제국’이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결정적 씨앗입니다. 그 씨앗이 뿌려진 순간, 이미 역사는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2. 번영의 조건: 연(緣) — 성장의 조건이 갖춰지다

씨앗만 있다고 꽃이 피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생명도 자라기 위해서는 반드시 **‘적절한 조건’—즉, 연(緣)**이 필요합니다.
제국의 흥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강한 야망과 이상(, 원인)을 품었다 해도,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시기, 환경, 기술, 그리고 사람들의 의지가 없다면, 패권은 결코 현실이 되지 못합니다.

국가가 빠르게 최강대국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로 강력한 군사력이 필요합니다. 군사력이 없다면, 다른 모든 요인이 아무리 많아도 마치 종이 카드로 지은 집처럼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군사력은 국가의 토대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이며 강력해야 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이 핵심 요소를 기초로, 네덜란드는 근대 자본주의의 씨앗이 싹트던 시기, 유럽에서 가장 먼저 금융 시스템을 혁신하며 꽃을 피웠습니다.
그들은 강력한 해군력과 상업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식민지를 개척하고 자원을 축적했으며, 무엇보다 **금융 시스템의 혁신(국채 발행, 주식회사 등)**을 통해 민간 자본을 국가 성장에 적극 활용했습니다.
이런 조건들이 네덜란드라는 씨앗에 영양을 공급하며, 세계 최초의 금융 패권국이라는 꽃을 피우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흐름은 단지 네덜란드 내부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당시 스페인의 쇠퇴와 유럽 대륙의 종교 전쟁, 그리고 그로 인한 정치·경제적 공백은 네덜란드에게 기회의 틈을 제공했습니다.
강력한 해양 상권을 유지하던 스페인의 재정 위기와 군사적 한계는 북해 교역의 주도권을 네덜란드로 넘겼고, 종교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로 이주한 유대인 상인들과 정보 네트워크는 강력한 연(緣)이 되었습니다.

영국은 이 모델을 벤치마킹하며, 더욱 강력한 ‘연’을 갖추었습니다.
산업혁명과 기계화, 분업 체계, 그리고 대규모 식민지 운영 능력은 영국을 세계 최강의 제조국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제조업은 금융보다도 더 직접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했고, 영국은 이를 통해 경제력과 군사력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석탄, 철, 과학기술, 인구 증가와 같은 다양한 내부적 연(緣)의 결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역시, 외부적 연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나폴레옹 전쟁(1803~1815)**은 유럽 대륙을 혼란에 빠뜨렸고, 영국은 해양 패권을 거의 독점할 수 있었습니다.
유럽의 경쟁국들이 내전에 집중하는 사이, 영국은 식민지 확장을 가속화했고, 전 세계의 원료와 시장을 연결하는 ‘제국의 회로망’을 형성했습니다.
또한, 미국의 독립 이후 아시아로 눈을 돌린 전략 전환은 당시 국제 정세 속에서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미국은 20세기 중반, 전혀 새로운 ‘연’을 타고 부상했습니다.
IT 산업, AI, 반도체, 생명공학 등 기술 혁신의 중심에 선 미국은, 단순한 생산국이 아니라 글로벌 시스템의 플랫폼 국가로 성장했습니다.
여기에 달러의 기축통화화, 할리우드와 인터넷을 통한 문화적 지배,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기업 생태계는 기술과 금융, 문화가 결합된 새로운 조건이 되었고, 이 복합적인 연이 미국을 세계 패권국의 정상으로 이끌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의 기저에는 역시, **국제 정세라는 거대한 ‘바람’**이 존재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은 유럽과 일본을 폐허로 만들었고, 미국은 피해를 입지 않은 유일한 산업국으로서 세계 최대 제조국이자 채권국으로 부상했습니다.
이어지는 냉전 구도와 소련의 해체경쟁자의 붕괴라는 외적 연이 되었고, 이는 미국의 일극 지배를 가능하게 만든 결정적 조건이었습니다.

 

내부와 외부의 연기: 독립된 번영은 없다

이처럼 강대국이 되기 위한 기본 요소는 늘 같지만, 시대마다 ‘연(緣)’의 구체적 모습은 달라졌습니다.
네덜란드는 금융, 영국은 제조업, 미국은 기술 혁신이라는 조건을 갖추며 번영했고, 이들은 각각 자신만의 방식으로 군사력, 경제력, 문화력을 결합해 패권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이때의 연은 단순한 자원이나 기술만이 아닙니다.
사회의 단결, 교육 수준, 윤리적 생산성, 리더십의 질은 물론, 다른 국가들의 쇠퇴와 전쟁, 전염병, 정치적 공백 같은 국제 정세까지 모두 **꽃을 피우는 ‘기후’이자 ‘계절’**이 되었습니다.

불교의 연기법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한 국가의 흥망 역시, 고립된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내부와 외부 조건들이 상호작용한 결과입니다.
타자의 몰락이 곧 한 국가의 흥기의 조건이 되기도 하며, 연은 언제나 상호의존적인 것입니다.
꽃이 피려면 계절이 와야 하듯, 제국이 번영하려면 반드시 그 시기의 연(緣)이 무르익어야 했던 것입니다.


3. 절정과 전환점: 과(果) — 찬란한 열매, 그리고 방심

제국의 전성기는 마치 한여름 끝자락, 나무 끝에 달린 탐스러운 과일과 같습니다.
빛나는 정점의 순간, 그들이 수십 년, 수백 년 쌓아 올린 조건들이 결실을 맺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이때가 바로 다음 붕괴를 잉태하는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불교에서 ‘과(果)’는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또 다른 인(因)을 품은 결과, 즉 순환 구조의 전환점입니다.

네덜란드는 암스테르담 주식시장을 통해 자본주의 세계를 선도했고, 지중해와 동인도를 아우르는 무역망을 구축하며 절정에 도달했습니다.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는 말처럼,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지배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국가가 되었습니다.
미국은 달러를 통해 전 세계의 통화를 통제하고,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기술력과 군사력으로 유일 초강대국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는 그 순간부터 패권국은 자기도 모르게 방심하기 시작합니다.
풍요는 탐욕을, 절정은 오만을 부르고, 시스템의 정착은 혁신의 둔화를 초래합니다.
‘과’는 그렇게 다음 쇠퇴의 원인이 되는 새로운 ‘인’이 되어, 고통의 고리를 이어가는 첫 고리가 됩니다.


4. 쇠퇴의 인과 연: 탐욕·분열·망각

불교

에서는 **모든 고통의 근원을 세 가지 독(毒), 즉 탐(貪)·진(瞋)·치(癡)**로 설명합니다.
이것은 개인의 고통뿐 아니라 제국의 쇠퇴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패권국은 스스로 무너지는 법입니다. 외부의 침략보다, 내부의 독이 더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탐(貪)**은 과도한 욕망입니다. 네덜란드는 무리한 식민지 확장과 해군력의 과소비로 힘을 잃었습니다. 영국은 지나친 군비와 식민지 전쟁으로 인해 재정이 파탄 났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패권을 상실했습니다. 미국 역시 과도한 국방비, 글로벌 개입, 그리고 세계 경찰로서의 피로감을 누적시키고 있습니다.

**진(瞋)**은 분노와 내부의 갈등입니다. 패권국은 번영의 과실을 공평하게 나누지 못했고, 이는 계층 갈등과 정치 양극화로 이어졌습니다. 영국 내 노동자 계급의 불만, 미국의 인종·이념 분열은 단순한 사회 문제가 아니라 체제 전체를 흔드는 균열이 되었습니다.

**치(癡)**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무지와 착각입니다. 제국은 자신들이 만든 시스템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네덜란드는 해상 무역의 영원성을, 영국은 산업 생산의 우위를, 미국은 기술과 달러의 절대적 패권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조건은 변합니다. 연기(緣起)의 법칙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쇠퇴의 인과 연은 늘 내부에서 자라며, 변화하지 못하는 자는 결국 무너집니다.


5. 반복되는 윤회: 역사란 다시 되돌아오는 바퀴

불교의 윤회는 개인의 삶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국가도, 제국도, 기업도, 문명도 ‘인과연’의 법칙 아래에서 **끊임없이 윤회(輪廻)**합니다.

  • 씨앗(因)을 뿌리고,
  • 조건(緣)을 통해 자라고,
  • 결과(果)를 맺지만,
  • 그 열매가 다시 ‘다음 고통의 씨앗’이 되어 순환합니다.

이 점에서 ‘빅 사이클’은 단순한 경제 순환이 아니라 윤회의 바퀴, 혹은 연기의 법칙이 국가에 적용된 예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 진정한 승리는 외적 힘이 아니라 ‘내적 통합’에 있다

레이 달리오는 말합니다.
“가장 큰 쇠퇴의 원인은 내부 분열과 방만이다.”
불교는 말합니다.
“모든 고통의 원인은 무명(無明)이며, 무명은 분별과 집착에서 비롯된다.”

결국 국가든 개인이든, 진정한 흥망성쇠는 외부의 힘보다도 내부의 마음 상태와 구조적 통합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제국의 사이클 속에서 ‘나’라는 존재와 '대한민국'이라는 존재의 사이클도 함께 돌아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국이 무너지듯, 나도 무너질 수 있고 대한민국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연기법을 바탕으로 깨어나고 새로이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